
On Christmas Night
난나
크리스마스의 레스토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랭엄은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몰려든 손님들로 꽉 들어찬 지 오래였다. 미슐랭 가이드에 3성 레스토랑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후로 아담 존스의 랭엄에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몰려왔다. 정말로 미슐랭 3성을 받을만한지, ‘셰프 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아담 존스가 다시 돌아온 게 맞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했고 아담은 그러한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다. 게다가 이번은 아담이 랭엄에 온 후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 크리스마스 특별 메뉴를 주문한 손님들에게는 기다림도 일종의 즐거움이었다. 다만 그 즐거움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토니를 비롯한 홀의 모두는 긴장한 채로 홀을 살폈다. 긴장으로 인해 빳빳한 목과 어깨를 감추고 미소를 띠며 손님을 접대하는 홀과 다를 바 없이 주방도 밀려오는 주문에 종일 고함이 오갔다. 아담은 그 중앙에서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감독했다.
마침내 런치 타임이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는 패밀리 밀 시간이 돌아왔다. 모두가 지쳐 널브러졌지만, 디너 타임은 더욱 바쁠 것이 분명했으므로 다들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입에 조금이라도 더 쑤셔 넣었다. 전투적으로 음식을 씹어 삼키며 맥스는 주방에선 도통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느끼기 어렵다는 불만을 터트렸다. 맥스가 물꼬를 트자 하나둘씩 동조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데이빗은 재빨리 아이폰을 가져와 캐롤을 틀었다. 사무실을 나오던 토니의 귀에 Wham!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캐롤이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쉽게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기도 한다. 토니는 패밀리 밀을 우걱우걱 떠먹는 아담을 보며 과거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한때 파리에 있었던 시절의 크리스마스 말이다. 지금보다 젊었고, 혈기왕성했으며, 아담을 열렬히 짝사랑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감정이 그때보다 얕다고 할 수 없지만, 그때 품었던 감정은 확실히 지금과는 달랐다. 뜨겁고 서툰 감정은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이 홧홧 타오르는 듯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기억이 어째서 이렇게 바쁜 날, 하필이면 캐롤 한 소절에 떠오르게 되었는지는 토니도 알 수 없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담의 듬직한 어깨와 등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장뤽 레스토랑의 크리스마스도 랭엄 못지않게 바빴다. 당시 아담과 토니는 풋내기였던 시절이었기에 지금 같은 여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장뤽의 불호령에 시달리며 18시간을 꼬박 불 앞에서 씨름하고 나면 지쳐 나가떨어질 만도 한데 그 날은 크리스마스였고, 장뤽 키즈 중 누구도 집에 돌아가겠다는 놈은 없었다. 끔뻑끔뻑 감기는 눈을 하는 토니도 아담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었기에 플랫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미 한 잔 걸친 아담이 토니의 목에 팔을 두르며 레스토랑을 빠져나갔고, 미셸과 맥스가 뒤를 따랐다. 리스는 멀찍이서 그들과 아주 멀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거리를 유지했다. 토니는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데도 느낄 수 없었다. 아담 때문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기 때문이었다. 26일 새벽 2시에 여는 바를 찾겠다고 휘청거리며 돌아다니던 다섯은 점점 올라오는 취기에 센 강이 보이는 다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날따라 그들이 자주 가던 바는 닫은 지 오래였고, 피로와 술기운에 슬슬 지친 기색을 보이는 미셸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리스도 이 정도 어울렸으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불퉁한 얼굴로 발길을 돌렸으며, 맥스는 사람이 빠지니 흥이 안 난다며 미셸을 쫄래쫄래 따라갔다. 남은 건 아담과 토니뿐이었다. 우리도 돌아가자며 몸을 일으키는 토니를 아담이 붙잡았다.
“바람 좀 쐬고 들어가자.”
지금까지 쐰 건 바람이 아니라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으나, 토니는 아담의 말에 저항하지 않았다. 털퍽 주저앉은 아담의 옆에 쭈그려 앉은 토니는 아담의 시선을 따라갔지만, 그곳에는 까만 센 강의 강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는지 토니는 세지 않았지만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담 몰래 훔쳐볼지 말지 한참 고민하던 토니가 아담에게 고개를 돌린 순간 하늘에서 하얀 눈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아담이 벌떡 일어나더니 토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토니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았다. 토니가 손을 잡자마자 아담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이제 집에 가자며 앞장섰다.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
But the very next day, you gave it away
This year, to save me from tears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아담이 흥얼거리는 캐롤과 함께 토니는 파리의 밤거리를 걸었다. 그날따라 아담이 부르는 캐롤의 가사에 토니는 왈칵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담의 듬직한 등을 보며 걷노라니, 다시는 이 거리가 좁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뭐해? 얼른 와.”
그때 아담이 멈추고 뒤따라오던 토니를 바라봤다. 토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아담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담은 더 이상 보폭을 넓히지 않았다. 토니는 우습게도 그 밤이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하얀 눈이 내리는 파리의 거리를 아담과 함께 걷던, 지독하게 추운 크리스마스 밤.
상념에 빠져있기에 크리스마스 저녁은 지나치게 바빴다. 아담의 귀환은 토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설레게 했음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토니에게 전달되었다. 토니도 메이터디 이전에 아담의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토니에게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조금 더 바쁜 저녁일 뿐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모두가 퇴근한 크리스마스 밤, 토니는 마지막으로 장부를 확인하고 덮었다. 피로감이 물밀 듯이 밀려와 토니는 등받이에 나른하게 몸을 기댔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잠들 것 같아 눈을 다시 떴을 때 토니 시야에 아담이 보였다. 토니는 헛것을 봤나 싶어 눈을 깜빡였으나 아담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 있어?”
토니는 아담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떤 의도로 묻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피로에 눈을 꾹꾹 누르던 토니는 내일 시간을 묻는 것이라 추측했다. 내일은 간만에 휴가였고, 그것은 아담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쉬어도 좋으련만 아담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응, 있어.”
“지금 말이야.”
“지금?”
토니는 의외의 말에 자세를 바로 했다. 아담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담의 의중을 도통 알 수 없었으나 토니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업무 얘기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업무 얘기일 것이다. 토니는 확신했다. 아담이 외투를 가져오겠다고 말하기 전까지 말이다. 토니는 어차피 퇴근하려던 참이었으니 아담의 장단에 맞추어 코트를 입었다. 랭엄을 나서자 차가운 밤공기가 토니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토니는 몸을 움츠리고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담은 춥지도 않은지 고작 가죽 재킷 하나를 입고 걸었다. 아담의 등을 보며 걷던 토니는 하늘에서 눈이 조금씩 날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면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몇 년 전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때도 아담과의 거리는 딱 이만큼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토니는 아담이 파리의 크리스마스, 그것도 아주 시시했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법 놀랐다. 아담은 멈춰 서서 토니를 돌아보았다. 토니는 아담과 눈을 마주친 찰나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흩날리는 눈 말고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아담은 ‘뭐해? 얼른 와.’라고 말할 것이다.
“이번엔 냉동 피자 말고 그럴싸한 거로 먹자. 내가 해줄게.”
토니는 그때 안주가 냉동 피자였던 것을 그제야 떠올렸다.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토니보다 온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담이었다.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리는 토니 때문에 아담은 무언가 말을 덧붙이려고 하였으나, 토니가 조금 더 빨랐다.
“그래. 그럴싸한 거 아니면 접시 돌려보낼 거야.”
마침내 아담도 함께 웃었다. 날리는 눈은 그치지 않고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담이 아닌 토니가 손을 내밀었다. 아담은 그 손을 잡으며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하얀 눈이 내리는 런던의 거리를 아담과 토니는 함께 걸었다. 춥지만 나쁘지 않은 크리스마스 밤이었다.